고려시대 도병마사 구성과 역할 및 역사적 의의

도병마사는 고려시대 변경의 군사 문제를 논의하던 회의 기관으로 도평의사사의 전신이었습니다. 도병마사의 최고직인 판사는 중서문하성의 5 재인 시중, 평장사, 참지정사, 정당문학, 지문하성사로 구성되었으며, 그다음 직책인 사는 6 추밀 및 직사 3품 이상이 임명되었습니다. 도병마사의 중요 임원인 판사와 사는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중추원의 추밀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려시대 도병마사는 고려 중기 이후로 운영된 군사 및 국방 관련 최고 회의 기관으로 국방 및 군사 전략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도병마사 설립 배경

도병마사는 고려 성종때 처음 설치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병마사’라는 칭호로 군사 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이었고, 추후에 ‘도병마사’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도병마사는 주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입니다.



도병마사의 구성원

왕을 중심으로한 고위 관료들로 구성되어 군사 및 국방을 튼튼히 하기위해 구성 되었습니다.

  • 낭사 – 왕명을 전달하고 의정에 참여하는 고위 관료
  • 재신 – 국정운영과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 관료
  • 추밀 – 군사업무와 국가 기밀을 관리하던 고위 군사 관료

모든 결정은 회의를 통해 국방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했습니다. 특히 왕은 이회를 직접 주재하며 중요한 군사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도병마사의 역할

도병마사는 군사 및 국방 정책의 중심 역할하고, 국가의 안보를 책임졌습니다.

  • 국방 예산 집행 – 군사의 활동에 필요한 예산을 책정 및 집행
  • 국방 정책 결정 – 외적 침입에 대비해 대응책 마련, 군사 전략 수립
  • 군사 조직 관리 – 군 편제와 배치 및 군사 훈련 및 준비, 점검


도병마사에는 정 4품 이상 경, 감, 사랑이 임명된 부사와, 소경 이하가 임명된 판관이 있었는데 판관 이상이 도병마사 회의에 참석했으며, 도병마사는 변경의 군사적인 문제를 의논하여 결정했고, 변경, 군사, 대외문제의 회의 기관 구실을 하였습니다.


도병마사는 민생 문제도 의논했다. 처음 도병마사는 양계민의 생활 문제를 의논하였는데 이는 점차 지역적으로 확대되어 준변경 지방의 진휼에도 미치고 마침내 고려 중기에는 전국 인민의 기곤을 구휼하는 방법까지 의논하는 등 군사적인 문제에서 민사적인 문제로 차츰 확대되어 갔습니다.




도병마사의 역사적 의의

고려시대 국가 안보와 국방 정책을 주도한 중요한 기관이었으며, 당시의 군사 및 정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도병마사의 운영과 활동은 고려의 군사 제도와 국방 정책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변화와 소멸

도병마사는 고려 후기까지 운영되었으나,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는 조선의 새로운 군사 체제로 대체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의정부와 삼군부가 군사 정책을 담당하며 도병마사의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도병마사는 고려시대 군사 및 국방 정책의 핵심 기관으로, 국가의 안보와 군사 전략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무신정변 이후에는 도병마사의 활동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1279년에 도평의사사로 개칭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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